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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를 읽고

by 팬시남 2022. 8. 13.

첫 문장에 책의 모든 내용이 담겨있는

<H마트에서 울다>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는 왠지 그 사연을 알 것 같은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저자는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큰 혼란을 느끼며 살았다. 딸이 잘 되길 바라는 것이 삶의 가장 큰 소망인 어머니와 꿈을 찾아 자신의 인생을 걷기로 한 딸이 언제나 좋은 관계로 지내기는 어렵다.
갈등은 고조되고 그 갈등조차 익숙해질 무렵 죽음의 그림자가 그들에게 드리운다. 저자는 어머니와의 헤어짐을 준비하고, 결국 어머니와 이별하고, 요리로 자신을 치유하고,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룬다.

 

h마트에서울다

 

나 역시, 당연히 어머니를 떠올렸다


<H마트에서 울다> 를 읽으면서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가장 가까운 부모를 통해서 세상을 본다. 성장하면서 부모라는 세상을 보는 안경을 벗고 비로소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나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통해 세상을 보았고, 시간이 지나 그 안경이 마치 (착용하고 잠들면 시력을 교정해주는) 드림렌즈처럼 나를 도와주어 대체로 긍정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전에는 ‘나중에 커서 뭐 해줄 생각하지 마라. 너를 키우면서 이미 보답은 다 받았다’ 라는 유명인이 아들에게 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 말을 알것 같다.

저자의 어머니도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낯선 땅에서 저자를 키우며 많이 외롭고 힘들었겠지만, 충분히 보답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딸이 그녀를 추모하며 쓴 글에 온 세상 사람들이 감동하는 것을 보며 행복을 느낄 것이다.

외국인의 시선에서 본 우리 나라의 식문화를 묘사하는 장면 (짜장면 배달이 왔을 때, 음식들을 묘사하는 장면이나, 상추쌈을 싸먹는 장면 등) 이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느껴졌다. 저자는 본업은 뮤지션이지만 글을 잘쓰는 작가였다. 읽는 내내 행복했다.

 

인상적인 구절들

 밑줄 그은 구절이 너무나도 많았다. 아래 구절만으로도 읽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궁금하신 분들은 꼭  읽어 보시기를 추천드린다. 

 

엄마는 단 음식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중략) 그리고 짜게 먹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것이 엄마가 타인을 사랑하는 방식이었으니까. 이를테면 듣기 좋은 말이나 끊임 없이 지지하는 말을 해주는 식이 아니라, 상대가 좋아하는 걸 평소에 잘 봐두었다가 그 사람이 부지불식간에 편안하게 배려받는 느낌을 받게 해주는 식이었다. 엄마는 누군가 찌개를 먹을 때 국물이 많은 걸 좋아하는지, 매운 걸 잘 못 먹는지, 토마토를 싫어하는지, 해산물을 안먹는지, 먹는 양이 많은 편인지 어떤지를 시시콜콜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제일 먼저 무슨 반찬 접시를 싹 비우는지를 기억해두었다가 다음번엔 그 반찬을 접시가 넘치도록 담뿍 담아서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드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갖가지 다른 음식과 함께 내어놓는 사람이었다. 28p
엄마의 사랑은 엄한 사랑 그 이상이었다. 무자비하고 단단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나약함이 설 자리는 털끝만큼도 내주지 않는 강철 같은 사랑이었다. 제 아이한테 가장 좋은 게 뭔지 열 발짝 앞서서 보는 사랑, 그 과정에서 아이가 아무리 고통스러워해도 개의치 않는 사랑이었다. 내가 다쳤을 때 엄마는 자신이 다친 것처럼 내 고통을 고스란히 느꼈고, 다만 과잉 보호에 죄책감을 느꼈던 것이다. 단언컨대 이 세상 누구도 우리 엄마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나는 그 사실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34p
엄마가 일찌감치 나에게 가르쳤던 것 중에 지금 생각나는 말은 이런 거다. "너의 10퍼센트는 따로 남겨두어라." 누군가를 아무리 깊이 사랑하더라도 혹은 깊이 사랑받는다고 믿더라도 절대 네 전부를 내주어서는 안된다. 항상 10퍼센트는 남겨두어라. 네 자신이 언제든 기댈 곳이 있도록. "나도 네 아빠한테 내 맘을 온전히 다 내어주진 않는단다." 엄마는 이렇게 덧붙였다. 35p
내가 잘 먹거나 어른들에게 제대로 인사하면 친척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예뻐." 예쁘다는 말이 착하다, 예의바르다는 말과 동의어로까지 사용되는 곳이다. 이렇게 도덕과 미학을 뒤섞어놓은 말은 아름다움을 가치 있게 여기고 소비하는 문화로 일찌감치 자리잡았다. 60p
어쩌면 엄마는 그동안 내가 원치 않는 무언가로 나를 만들어보려 한 자신의 노력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더 이상 노력하기를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차피 내가 이런식으론 1년도 더 못 버티고 결국 엄마가 옳았다고 생각할 거라 믿고 전략을 더 세련된 걸로 바꿨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 사이에 벌어진 5천 킬로미터라는 거리 때문에 그저 나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기뻤는지 모를 일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나만의 길을 개척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찾았음을 비로소 받아들이고, 마침내 내가 어떻게든 잘해낼 거라고 믿게 된 건지도 모른다. 84p
한국 엄마들은 서로를 자기 아이의 이름으로 불렀다. 이를테면 지연의 엄마는 지연 엄마이고, 에스터의 엄마는 에스터 엄마라고 불렀다. 나는 그분들의 진짜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 자신의 정체성이 자기 아이들에게 흡수되어버린 것이다. 140p
그 날 엄마 옆에 누워 있으려니 어렸을 때 차가운 발을 녹이려고 엄마 넓적다리 사이에 슬며시 발을 끼워넣던 일이 떠올랐다. 엄마는 부르르 떨면서 속삭였다. 널 편안하게 해줄 수만 있다면 엄마는 어떤 고통도 감수할 거라고, 그게 바로 상대가 너를 진짜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고. 그 부츠가 떠올랐다. 내가 발이 까지지 않고 편안하p게 신을 수 있도록 엄마가 미리 신어 길들여놓은 부츠가. 나는 이제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바랐다. 부디 내가 대신 고통받을 방법이 있기를, 내가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는지 엄마에게 증명할 수 있기를, 149p
한 때 어떻게든 미국 교외의 또래 사이에 섞이려 안간힘을 쓰며 청소년기를 보냈고, 내 소속을 증명해야 할 무언가로 느끼면서 성인이 되었다. 내가 어느 편에 설지, 누구에게 동조할지 결정하는 일은 번번이 남의 손에 맡겨졌지 내 스스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두 세계 중 어느 세계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었다. 노상 반만 인정받고 반은 이방인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나보다 그 세계의 지분이 더 많은 누군가가, 온전하고 완전한 누군가가 자기 멋대로 날 쫓아낼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오랫동안 미국이라는 나라에 속하려고 별짓을 다 했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바랐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내가 바란 것은 오직, 나를 밀어낸 두 사람에게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는 우리 세상 사람이 아니야. 네가 아무리 애써본들 네 엄마한테 필요한 게 뭔지 결코 제대로 알지 못할거야. 185p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내게 너무도 익숙한 한국말. 내가 평생 들어온 그 다정한 속삭임. 어떤 아픔도 결국 다 지나갈 거라고 내게 장담하는 말.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위로했다. 엄마의 모성이, 엄마가 느꼈을 테지만 능숙하게 숨겼을 무진장한 공포를 제압해 버린 것이다. 엄마는 무슨일이든 어찌어찌 잘 풀릴 거라고 내게 말해줄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었다. 난파선이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담담히 지켜보고 있는 태풍의 눈과도 같았다. 203p
그토록 잘 아는 누군가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은 어려웠다. 고르고 고른 단어마다 초라하기 짝이 없고 허식만 가득했다. 오직 나만이 드러낼 수 있는 엄마의 특별한 부분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엄마는 단순히 주부나 엄마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엄마가 가장 자랑스러워한 두 역할을 독선적인 태도로 얕잡아보았다. 양육과 사랑을 택한 사람에겓, 돈을 벌고 창작활동을 하려는 사람이 얻는 만큼의 성취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엄마의 예술은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고동치는 사랑이었고, 노래 한 곡 책 한권만큼이나 이 세상에 기여하는 일, 기억될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사랑 없이는 노래도 책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 어쩌면 나란 존재가 엄마가 세상에 남기고 간 지신의 한 조각에 가장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그냥 겁이 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269p
"내가 뭘 깨달았는지 알아? 너 같은 사람은 여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는 거야." 
너 같은 사람은 여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내가 무슨 다른 도시에서 온 이방인이거나, 저녁식사에 초대한 친구가 데리고 나타난 특이한 손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렸다. 나를 낳아 키우고 나와 18년을 한집에서 살았던, 내 반쪽인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기엔 너무 이상하게 들렸다. 그러니까 내가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듯이 엄마 역시 여태 나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세대와 문화와 언어가 갈라놓은 단층선 반대편에 각각 던져져 기준점도 없이 죽도록 헤매기만 했을 뿐 서로가 서로의 개대를 생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겨우 요 몇 년 전에 와서야 우리는 불가사의한 문을 열어 서로를 수용할 심리적 공간을 말어내고, 서로의 차이를인정하며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아보려고 탐색했다. 그러다 가장 풍성한 이해의 과실을 거둬들여야 했을 시간들이 그만 난폭하게 잘려나가고 말았고, 이제 나는 열쇠도 없이 남은 비밀들을 혼자서 해독해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285p
그 때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치유법이었다. 오래된 김치는 전이나 볶음밥에 넣어 먹고, 새로 담근 김치는 반찬으로 먹었다. 내가 먹을 양보다 더 많이 김치를 만들었을 땐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중략) 나는 엄마가 김치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과는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주야장천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너한테서 항상 김치 냄새가 날 거야. 그 냄새가 네 땀구멍으로 배어 나올 테니까. 엄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말했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361p
카메라 렌즈 뒤에는 어김없이 엄마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나를, 나의 단순한 즐거움을, 내 안의 세계를 포착해 보존하려던 엄마가. 368p
엄마는 나의 대리인이자 기록 보관소였다. 엄마는 내 존재와 성장 과정의 증거를 보존하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 모습을 순간순간 포착하고, 내 기록과 소유물을 하나하나 다 보관해두면서. 엄마는 나의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때, 결실을 맺지 못한 열망, 처음으로 읽은 책. 나의 모든 개성이 생겨난 과정, 온갖 불안과 작은 승리. 엄마는 비할 데 없는 관심으로 지칠 줄 모르고 헌신하면서 나를 지켜보았다. 
 엄마가 사라지고 나니 이런 것들을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기록되지 않은 일은 엄마와 함께 죽어버렸으니까. 한낱 기록과 내 기억이 남았을 뿐이었다. 371~372p
내 기억을 곪아 터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가 내 기억에 스며들어 그것을 망쳐버리고 쓸모 없게 만들도록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어떻게든 내가 잘 돌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공유한 문화는 내 심장 속에, 내 유전자 속에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잘 붙들고 키워 내 안에서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엄마가 가르쳐준 교훈을, 내 안에, 내 일거수일투족에 엄마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언젠가 후대에 잘 전할 수 있도록. 나는 엄마의 유산이었다. 내가 엄마와 함께 있지 못한다면 내가 엄마가 되면 될 터였다. 373p

 

그리고 얼마 전 진행한 북토크 

 저자인 미셸 자우너의 밴드인 저패니즈 브렉퍼스트 공연 차 내한하였고, 유일하게 문학동네 편집자이기도 한 편집자k님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북토크를 진행하였다. 약 1시간 30분 동안 책과 개인적인 궁금증에 대해 질의 응답이 있었다. 책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한 번 쯤 보면 좋을 것 같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도 출연하신 것 같은데, 이번 방한 일정에서 유일한 북토크 일정이었다고 한다. 

 

https://youtu.be/hfW2Nb2c-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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