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날씨

정리

by 팬시남 2020. 6. 4.

살면서 정리하고 싶은 수업을 들은 적이 얼마나...아니 있긴 있었나.


시험을 위해 꾸역꾸역 집어 넣고 그것을 다시 게워내기 바빴는데,
정말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주는 선생님 몇 분을 만나서 좋았던 한 학기였다.
현대문학사 시간에 (비록 매시간 힘없이 고개를 떨구어야 했지만) 노트와 수첩에 수업 내용과는 별개로 적어놓았던 것을 정리해 본다.
 


문학은 '균열의 묘사'이다. 못 견딜 만한 상처,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 내서 쓰는 것이 작가가 하는 일이다.

 
어떻게 쓰느냐는 기성작가들에게 무엇을 쓰느냐는 젊은 작가들에게 배워햐 한다.

 
고도로 집중된 상태에서 일하지 않는, 부지런하지 않는 상태라야만 문학이 만들어질 수 있다.

 
문학공부는 손으로 하는 공부다. 좋은 시가 있으면 읽다가 옮겨도 보고, 소설은 시점을 바꾸어 써보고.

 
시는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하게 하는 것이다. 개인적 의견, 도덕을 시에 쓰지 마라. 이성보다는 감정에 충실 하라.

 
(시와 관련하여)문학을 문학으로 만드는 형식. 그 형식에 오히려 신경을 써 보자.



"다른 사람에게 정신을 유연하게 개방한 작가는 누구나 쓰면 쓸수록 쓸 거리가 더 많아짐을 절감한다. 쓸 거리가 없다고 불평하는 작가는 대체로 자아에 갇혀 있는 작가이다.<토지>의 공간과 시간이 아무리 광대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적 영웅주의와 정치적 대의명분보다 일상의 잗다란 현실이 더 진실하다는 시각을 단편들과 공유하고 있다."

 

-  김인환 평론집 <기억의 계단> 111p

 



시험 범위를 잘 못 알아서 읽었던, 쉽게는 들어오지 않는 글들을 읽으면서도 들었던 생각은 아. 이 사람, 정말 글 잘쓰는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마르시아스 심의 소설에 나오는 말마따나 '이게 내가 굴복해야할 대상이로구나. 나로서는 말할 수 없는 것이로구나 하는 겸허한 마음'에 이르게 되었다.
 
아직 학점이 나오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크게 뒤통수를 맞지 않는 이상 다음 학기 그의 비평론 수업을 들을 것이다. 기대된다. 그의 이야기가. 흐흐흐.

 

2006.06.23 02:35 전체공개

 

 

 

 

'오늘의 날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폴라로이드 작동법 (김종관X정유미)  (2) 2020.06.09
영화 질투는 나의 힘  (0) 2020.06.09
하나의 성취  (2) 2020.06.04
Brooks was here  (0) 2020.06.04
집에서 본 하늘  (2) 2020.06.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