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진의 임계장 이야기 (후마니타스 출판)

임계장 이야기 표지, 사진은 책에 삽입된 것으로 경향신문 자료.

근래 읽은 어느 책 보다 묵직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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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장은 임씨(氏) 성을 가진 계장의 이야기가 아니다. 임시직 계약직 노인장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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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에서 정년 퇴직한 저자가 낱낱이 기록한’ 아파트, 건물, 터미널 경비원 생활에 대한 르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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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시작했을 때는 ‘왜 좋은 직장에 다니던 그가 퇴직 후에 경비원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하지만 읽어 나가면서 중요한 것은 그가 경비원 생활을 하게 된 이유가 아니라, 노인들이 경비원 생활을 하며 겪는 온갖 비인간적인 처우와 그에 대한 개선 필요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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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많은 사람을 뽑는데 필요한 것은 그저 ‘근골격계가 튼튼한 몸’ 뿐이다.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아프면, 병가를 내고 쉬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으로 해고된다. 종이보다 자르기 쉬운 사람들이 ‘임계장’들이다. 

 

저자는 38년동안 한 직장을 성실하게 다녔지만, 퇴직 후 불과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3개의 일자리에서 해고된다.

 

시작부터 저자가 겪은 고된 노동과 차별이 담담하게 기술된다. 그리고 어떻게 '삶에 대한 낙관적 믿음' 이라는 것이 무너질 수 밖에 없는지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 

 

 

 자치회장의 심기를 거스렸다는 이유로 아파트에서 해고되고, 본부장 사모를 알아보지 못해서 건물 경비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고, 앞뒤 가리지 않고 몸을 혹사 시키며 일하다가 병을 얻어 터미널 경비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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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견뎌 내지 못하는 일과 기피하는 일은 고령자의 차지가 된다. 젊은이가 못 견디는 일을 노인들은 견뎌 내기 때문이다. 견딜 만해서가 아니다. 견디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중략) 
젊으니까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소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인들은 그런 헛된 꿈을 꾸지 않는다. 고령층은 늙은 소처럼 아무 불평이 없다. 여물만 제때 주면 제 주인을 제대로 섬기는 충직한 노복이 바로 고령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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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 땅의 늙은 어머니, 아버지들, 수많은 임계장들의 이야기를 나의 노동 일지로 대신 전해 보고자 써낸 것이니 책을 읽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더라도 마음 아파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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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가족을 위해, 막중한 책임감으로 무식하리 만치 일했던 아버지는 책 말미에 아래와 같은 글을 남긴다. 이 글을 읽을 아내와 자식들의 ‘마음씀’ 이 걸리는 것이다. ⠀

 

아팠다.
끝까지 가족의 마음이 다칠까 생각하는 아버지의 배려가,
이런 근무 환경에서도 일할 수 밖에 없는 많은 임계장들의 상황이.

 

그리고 이 현실에 나라는 개인이 어떠한 도움을 주기도 어렵다는 사실이 미안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