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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은희경, 단편소설집 <타인에게 말걸기 >중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 독후감

by 팬시남 2021. 1. 21.

 

"We're Just Ordinary People"

 - 제목은 John Legend 'Ordinary People' 가사에서 착안 - 

 

은희경 '타인에게 말걸기' 표지 1996년 출간 

 

낭만적 사랑의 시작과 과정, 결말을 재기넘치는 문체와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등의 소설과 닮아있다. 그의 소설이 사랑이라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재구성하려는데 반해, 은희경의 이 작품은 사랑의 재구성에서 한발 더 나아가 ‘존재하는 모든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들’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이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과연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는 말일까. 특별하지도, 위대하지도 않은 연인이 있을 수 있나?’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을 할 때, 오직 자신의 사랑만이 특별하고 고귀하며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제 아무리 높은 사회적 지위와 많은 부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도 사랑을 하게 되면 평범하고 단순한 보통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작품은 특정한 연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이 세상의 모든 연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고, 그 예상은 맞아 떨어진 것 같다.

 

 이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두 가지 모티프는 사랑이 시작되고 진행될 때 나타나는 ‘이상화’와 사랑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소통의 부재’이다. 작품 속의 연인은 ‘나는 사랑에 빠졌어’라는 자기암시와 ‘저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야’라는 최면, ‘이것이야말로 나의 진짜 첫사랑이야’하는 이상화의 세 가지 구색을 다 갖추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연스레 얻게 된 그들의 열정에 대해 어떤 ‘절대성’을 느꼈고, 스스로를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이라고 결론 내리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이상화의 일부로서, 사랑의 기대치를 높이긴 하지만 그 만큼 큰 실망도 따르게 만든다는 점이다. 뚜렷한 근거가 없는 생각은 작은 일에도 쉽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상화에 균열이 일어날 때, 그 틈을 메워줄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나누는 대화뿐이다. 나는 광고카피 문구였던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요.”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말하지 않으면 결코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없다. 사랑에 있어 지속적이고 사려깊은 대화란 의무이자 당위이다. 회사에 사표를 내려고 고민하고 있는 남자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필요했고, 흰머리가 보여 머리를 자른 여자에게는 자신이 여전히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확인시켜줄 남자의 말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야기하지 못했고, 만나기 전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이별을 하게 된다.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오해와 그로 인해 발생한 이상화의 균열 등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결국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은 작품의 제목을 의도적으로 배반하여 평범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분명히 특별하지만 그것을 하는 방식은 특별하지 않은 것 같다. 사랑을 하는 방법을 안다고 사랑을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랑을 잘 하는 방법이 있는지 조차 의문이지만, 무엇보다 최선의 방법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중요하지 않나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의견을 이야기함으로써 서로의 생각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니까.’

 

- 2006년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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