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어린 시절부터 커피를 마시면 두뇌 회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를 믿고, 대학교 입학 때까지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술보다도 뜸하게 마시던 커피는 담배처럼 나와 맞지 않는 기호식품이었다. 그런 내가 커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부터였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마키아또 등 처음 듣는 커피부터 카푸치노, 카페라떼 등 익숙한 커피까지 그 제조 과정을 옆에서 보고 그 커피들을 서빙하며 간혹 맛도 보면서 커피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또 99년 당시 스타벅스가 우리나라에 1호점을 개설하면서 일었던 에스프레소식 커피의 붐도 관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러한 연유로 커피에 대해 관심이 있었지만 인스턴트 커피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입장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인스턴트 식품이 그러하듯 몸에 좋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커피 회사에 입사한 후 커피 공장을 견학하여 제조 과정을 보면서 이곳의 커피가 질적인 측면에서 결코 다른 커피에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뒤로 이어진 것은 당연히 커피에 대한 애정과 잦은 음용 횟수였다.
신입사원 교육과정을 통해 커피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마침 교육과정 중 읽어야 할 책 중에 <커피의 역사>라는 커피 역사서가 있어서 커피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2. 커피의 역사는…
이 책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재배되기시작한 커피가 어떻게 중동과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를 거쳐 현재의 세계적인 기호식품으로 자리잡아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빨갛고 작은 알멩이가 세상에 자리잡기 까지는 그렇게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유럽의 토양에 맞는 재료로 만든 와인이나 맥주와 겨뤄야 했으며 식민지와 자본주의라는 이름 아래 유럽의 손을 타고 각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커피는 처음에는 약으로 여겨졌으며, 한때는 지적인 산물로 추앙받기도 했다. 카페는 정치적인 무리들, 말 많은 무리들의 산실이 되기도 했다. 커피의 가격을 유지하려는 브라질 정부는 커피볶는 냄새를 풍기며 커피를 대량으로 불질러 버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커피는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호품으로 자리잡았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정리해본다.
“적당한 크기의, 휘어지는, 나무라기보다는 관목에 가깝고 어두운 녹색의 단단하고 빛나는 잎이 달린 이 가지는 월계수를 닮아 있었다. 잎사귀의 엽액에서부터 짧고 하얀 꽃이 핀 것이 자세히 보면 자스민 같기도 했다. 꽃이 져서 떨어진 자리에는 자홍색을 띤 작은 딸기 같은 열매가 매달려 있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넣고 만지면 꽤 크다고도 느낄 수 있을 법한 그런 열매였다.”
『커피의 발견 : 칼디는 염소를 치는 목동이었다. 가뭄이 계속되자, 그는 평소 가지 않던 먼 곳까지 염소 떼를 몰고 갔다. 염소들을 풀어 풀을 뜯게 하던 칼디는 이상한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염소들이 어떤 나무의 잎과 열매를 먹더니 평소보다 더 껑충거리고 들뜨는 것이 아닌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염소들이 먹는 열매를 직접 따먹어 보았다. 그러자 자신도 들판을 가로지르며 마구 춤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신기한 열매의 소문이 널리 퍼져 커피의 기원이 되었다. 목동들은 그 열매를 갈아 동물의 지방과 섞어 작은 덩어리로 만들어 먼 길을 떠날 때 고열량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다녔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진다.』
이렇게 발견된 커피는 그 마력을 발산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특히, 놀라웠던 사실은 커피가 이슬람 세력권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마호메트는 ‘안티바카스주의’를 지향하면서, 술에 대적하는 커피의 보급을 적극 장려했다는 것이다. 커피의 본고장 하면, 브라질이나 유럽을 상상하지만 실제로 커피가 제일 먼저 꽃피고 자리잡았던 지역은 이슬람 문화권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오히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커피를 악마의 음료라고 배격하면서 와인 등을 마시며, 커피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을 보였다고 한다.
3. 사교와 커피
이 대목은 바로 ‘커피의 기적’적인 효과인 기호식품으로서 사람들 사이에 우애나 대화를 촉진시킨다는 투르크인들의 믿음을 나타낸 구절이다. 또한, 커피는 산통과 비염을 완화시켜 저녁식사 후에 마시면 좋고, 졸음도 방지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이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커피의 순기능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커피로 인해 사람들은 대화할 수 있고, 우정을 쌓을 수도 있다. 커피를 마시며 학생들은 공부를 할 수 도 있고, 약대신 사용하여 위장병에도 효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런 기적적인 커피의 효능 때문에 오늘날의 커피가 전 세계인의 기호식품으로 자리잡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잔의 커피야 말로 기적이다. 유대관계를 멋지게 집합해 놓은 음악의 하모니와도 같은 기적. 커피는 다양한 재료가 끊임없이 춤 추는 무도장이다.”
커피는 ‘체스 두는 사람들과 사색가들의 우유’였다. 그들은 커피 없이는 사색과 체스를 두는 데 능률적이지 못했고, 또한 커피는 정치가들을 현명하게도 만들었다. 커피를 마신 정치가들은 눈을 반쯤 감고도 모든 걸 꿰뚫어 본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았고, 생각에 잠길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얻어지는 에너지는 우리가 상상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투르크에서는 심지어 아내가 주는 커피를 남편이 거부하는 것이 이혼사유에 해당한다는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커피는 시인에게 아름다운 시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영감을 주었고, 여인들에게는 오순도순 모여서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커피한잔의 여유를 즐기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 할 수 있었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연애편지를 쓸 수 있는 환경도 제공하였다.
『야영지와 전장에서는 투르크의 전사들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었고, 가정에서는 철학적인 연구 집단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봉사했다. 심지어 여성들까지 이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가 노동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것이 밝혀졌고, 투르크에서는 바야흐로 이 국가적인 음료가 식품의 일반적인 항목이 되었음은 물론 영양 면에서도 유효하다는 결론과 함께 빵이나 물에 못지않은 중요한 음식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
커피는 전사들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었고, 노동의 고통을 줄여 주었다. 영양면에서도 인정을 받았고, 개인은 물론 나라 전체가 총체적인 폭음에 빠져 알코올음료를 소비하는 데 대한 해독제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주로 여성에 의해 소비된 ‘묽은 커피’의 음용은 남성이 지배하는 독일에서 남편, 아버지, 오빠와 남동생, 아들에게 비웃음을 대상이 되었다. 이때 생겨난 두 가지 새로운 용어가 오늘날까지도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데, ‘카페클라치’와 ‘카페슈베스터’가 그것이다. 전자는 커피 파티에서 여자들이 이야기하는 가십이나 스캔들을 의미하며, 후자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 가십이나 스캔들을 좋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처럼 커피는 남성에 의해 ‘여자의 음료’로 간주되었고, 이런 생각은 당시 그러진 수많은 캐리커처에서 발견된다.』
이 대목은 약간은 우스꽝스럽기도 한 일화로, 커피가 여성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진한 커피보다는 묽은 커피를 즐겨 마시게 되는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커피가 남성에 의해 ‘여자의 음료’로 간주되었다는 사실보다는 많은 여인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가십이나 스캔들에 관한 이야기 꽃을 피웠고, 그런 이들을 일컫는 단어까지 생겨날 정도로 그러한 현상이 만연했다는 점이다. 즉, 커피는 연애편지를 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고, 커피를 마시면서 사람들은 가십이나 스캔들을 이야기하고, 또 그러는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 친해질 수 있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커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4. 국가의 활력소
18세기에 커피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당시는 현실성의 시대였고, 사람들은 스스로를 비웃는 경향이 강했으며, 무엇보다 ‘사실’에 관심을 기울였다. 커피는 이러한 비꼼의 풍토를 상징하는 매개체였다. 18세기 지식인들은 커피를 마심으로써 지적인 능력을 배가 시켰다. 커피가 없었더라면 결코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든 카베하네에 앉아 있다가 아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관례인데, 이는 먼저 온 사람이 나중에 온 사람을 위해 카베를 ‘대접’하겠다는 의미이며 새로 온 사람은 공짜로 카베를 마실 수 있다. 즉, 먼저 온 이가 나중에 온 이가 나중에 온 친구를 손님으로 대접하며 반기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커피하우스 예법이라 하여 ‘자바’라 부른다. 자바는 무료라는 의리를 지니고 있다. 』
이 대목은 ‘커피의 역사’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이다. 유럽에 커피하우스가 한창 번창할 무렵에는 커피하우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던 사람이 새로 온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하면서 공짜로 커피를 대접하는 데, 이를 ‘무료’라는 뜻의 ‘자바’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는 커피하우스의 예법으로 까지 불릴 정도로 커피를 친구에게 대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예이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커피하우스에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고, 지식인들은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하고, 글을 썼으며 토론을 벌였다. 커피하우스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나는 ‘국가의 활력소’로서의 역할이라고 말하고 싶다. ‘커피’라는 기적의 음료를 커피하우스에서 사람들이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고, 나라, 정치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며, 많은 문학작품을 배출했고, 낭만을 낳았다. 이는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커피가 지금처럼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5. 오늘의 커피
현대인에게 커피는 한 잔의 여유이다. 우리는 비록 커피나무가 사랑할만한 자연환경도 가지지 못했고, 커피를 전파할만한 자본주의적 규모와 욕심도 가지지 못했고 커피의 막강한 라이벌인 차의 세력이 널리 퍼져 있는 곳이지만 짬날 때마다 뽑아드는 자판기 커피의 위력만큼은 다른 어느 나라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막강하다.
커피의 깊은 맛이라는 것은 이른바 쓴 맛이다. 불쾌하지 않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쓴 맛. 그 쓴 맛은 오랫동안 커피 열매가 소외되는 원인이 되었고 한번 그 효과를 본 사람들에 의해서 계속해서 뻗어나가 현재에는 커피만으로도 거대그룹을 이룰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동안 커피는 초코파우더와 카라멜시럽, 스팀 밀크에 뒤덮힌 달콤함으로 연상이 된다. 씁쓸한 것은 맛이 아니라 커피가 지나간 자리에 자리잡은 인간의 탐욕이다. 유럽의 팽창주의와 플랜테이션의 도구로 이용되는 인간들, 불질러지는 커피 나무, 그리고 결국은 그 과정을 거쳐 커피를 마시고 있는 지금의 우리 모습이다. 단순한 문화전파라고 하기에 커피가 지나간 자리에는 전근대사가 보여주는 씁쓸한 비극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커피가 악마의 씨앗이라고 했던가. 그 유혹과 질투와 탐욕의 역사는 향기만큼이나 강하다.
“커피가 작은 위트를 빛나게 한다. 아무리 시시한 작가라도 커피 때문에 창의력이 풍부해질 수 있다. 커피 안에는 미덕이 있으며, 우리의 기억력을 강화시켜 쉬지 않고 재잘댈 수 있게 한다. 운율과 이성에서 벗어나 역사처럼 이야기를 분출해낸다. 커피는 기적을 만들어내며 어리석은 이의 머리를 새롭게 한다. 침묵 속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작가는 없다. 커피의 강렬함과 미덕은 우리의 기억력을 두 배 좋게 한다. 그 한 방울 한 방울은 우리에게 힘을 준다. 끊임없이 재잘거리고 딱딱한 운율에서 벗어나, 역사처럼 이야기를 분출해낸다.”
커피 회사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커피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해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커피는 우리가 몰랐던 시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고, 오래 전부터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였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잠을 쫓는 신령한 음식, 이슬람의 와인, 초자연적인 악마의 힘을 주는 바람직하지 못한 액체, 통증을 완화시키는 약제, 부자들이나 향유할 수 있는 비싼 생활용품.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있는 커피를 설명하는 말들이다. 이처럼 커피는 다양한 시각에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종교적 의미에서 또 경제적 관점에서 커피에 대한 상반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대립도 있었다. 이 단순한 액체 하나를 두고 저명한 철학자와 종교학자들이 모여 ‘바람직한 것이다, 아니다’ 를 논하는 장면을 상상할 때는 옆에 놓인 커피 한 잔이 참 무색하리만큼 그 존재감이 너무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결코 얇다고 볼 수 없는 이 책의 내용이 독자에게 혼돈을 주거나 다소 어렵다는 이유로 누락된 다른 이야기에 비한다면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니 과연 이 음료에 대한 일화는 얼마나 많은 것인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커피가 정치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고 우리나라의 경우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시기가 고종 때이다. 당시는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커피가 조선이라는 역사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그 때의 영향으로 어떤 커피가 한국에서 탄생했고 아직도 자리잡고 있는지 궁금했다. 저자가 조선에 대해서 아니, 동양의 역사,경제, 정치에 대해서 언급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세계의 역사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커피, 커피를 통해 세계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이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책보다도 흥미로웠고 세계사에 대해 폭넓은 시각을 가지게 도와주는 책이었다. 더불어 세계 경제와 정치사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는 점도 좋았다. 이 책의 제목은 ‘커피의 역사’이지만 이 책은 결코 커피만을 얘기하고 있지 않다. 커피의 ‘역사’를 말한다기 보다는 역사에서의 ‘커피’를 끄집어 내고 있는 것이다.
- 2008년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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