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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독서감상문, 최용범,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줄거리 요약

by 팬시남 2021. 1. 26.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최용범 

 

1. 들어가며

 

  강준만 교수가 쓴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 편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을 읽고,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역사적 진실이 이렇게 흥미진진한 것이었던가? 나는 왜 서른을 몇 년 앞두지 않은 지금에서야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 하는가. 그리고 왜 진작에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는가. 비교적 충실하게 대학교육까지 받고 있다고 자부해왔는데 그러한 나의 믿음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던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나라 공교육에 대한 배신감까지 든다고 할까?

 

그리고 전라도 출신이 아닌 사람들의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어디서부터 극렬해진 건지 명백하게 깨닫게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전라도 사람’에 대한 편견에 동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왜 그들이 선거 때마다 신군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정당에 표를 줄 수 없었는지, 한층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내 생각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책이든 기사든 무엇이든 그것을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언젠가부터 내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진실에 대해 알고 싶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 왜곡될 수 있는지 조금이나마 깨닫게 된 지금(그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창피할 따름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약간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라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대학교 1,2학년 때인가. 우리나라 현대사를 제대로 알아야 이 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때, 그 때 미루지 말고 공부를 했었다면 좋았을 뻔 했다. 비록 수년 늦어지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생각으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이 다행이다. 지금껏 살아온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세상에 대해 공부하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광주학살이 사람들에게 남긴 트라우마의 의미. 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도 부채의식을 느끼고, 그렇게나 많은 후일담이 생겨났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읽어 봐도 격한 감정이 느껴진다. 위의 책을 읽기 전까지 누구도 나에게 광주의 진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지 않았고, 그 진실을 알아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우리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가장 홀대 받은 부분인 현대사를 책을 통해 알아가면서 참 재미있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다.

 

 

 

2. 이 책은 어떻게 말하고 있나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를 선택하게 된 이유도 미처 배우지 못했던 우리 역사를 다시 한번 되새김질해보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단행본 한 권으로 그러한 기대를 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머리말에도 우리 역사를 관심 있게 보고자 하는 초심자가 맛보기 식으로 부담 없이 읽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같은 책이라고 기술되어 있으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공무원 수험서로도 많이 사용되는 한영우의 <다시 찾는 우리역사>를 두어 번 정도 읽은 적이 있다. 학창 시절 시험만을 위해 암기하던 국사교과서를 읽을 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며 읽으니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일관된 논조로 어렵지 않게 기술된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역사의 얼개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를 읽고 나니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한반도에 최초로 인간이 살기 시작한, 70만년 전의 얘기부터 최근 노무현 정부까지의 역사를 단 한 권으로 엮어놓았다. 그 구체적인 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장은 선사문화와 고대국가 건설에 관한 내용이다. 고조선의 성립과 삼국시대의 전개까지의 시대를 다루며, 한국인의 기원은 누구인지, 삼국의 건설과정은 각각 어떠했는지, 이차돈의 순교에 숨겨진 뜻은 무엇인지, 왜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는지, 백제 멸망의 진짜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두 번째 장은 통일신라와 발해에 관한 내용이다. 신라가 삼국전쟁에서 승리한 시점에서 고려가 건국되기 까지를 다루고 있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건국과 발해의 역사적 위치에 대해, 통일신라시대의 불교를 대표한 스님들, 후삼국 시기 궁예가 몰락한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왕건의 정권장악 과정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세 번째 장은 고려시대에 관한 내용이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의 건국에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까지를 다루고 있다. 거란전쟁에서의 승리, 이자겸과 묘청 등의 반란, 코리아라는 이름이 붙게 된 고려의 무역, 고려청자로 대변되는 고려의 문화재들, 무신정권과 삼별초의 항쟁, 몽고의 간섭과 공민왕의 개혁, 고려 말의 부패상 등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네 번째 장은 조선시대에 관한 내용으로 조선건국에서 조선 말기 민중반란까지를 다루고 있다. 조선의 문물정비(토지제도, 법전 등), 세종대왕의 과학기술 장려, 세조의 쿠데타와 4대 사화, 당파의 형성과 진행과정, 임진왜란과 의병의 활약, 병자호란과 소현세자의 의문사, 실학의 발전, 평안도 농민전쟁을 비롯한 조선 말기 민중항쟁, 흥선대원군이 세력을 잡게 되는 과정 등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다섯 번째 장은 근대의 전개와 현대사회의 성립에 관한 내용으로 제국주의 침략에서 민주국가 수립까지를 다루고 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의 외세침략에 대한 조선의 대응, 동학농민전쟁, 독립협회와 신간회의 활동, 3.1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 일제의 수탈과 해결되지 못한 친일파의 문제, 임시정부의 성립과 광복 이후의 정부 수립과정, 신탁통치를 둘러싼 찬반 논란과 반민특위의 좌절, 4.3민중항쟁과 미군정, 한국전쟁, 4.19혁명에서 시작된 민주주의 등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전술했듯 이 책은 딱딱한 역사책이 아니다. 한국사를 고대사회, 통신신라와 발해,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와 현대사회 등 크게 5장으로 나누어, 각각을 다시 10여 편 정도의 주제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시대순으로 정리하되, 그 안에서 다시 주제별로 구성되어 있는 형식이다. 각 장의 시작은 '고대사회의 10대 뉴스', '고려시대 10대 뉴스'와 같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10장면을 뽑아 연대순으로 정리하여, 역사의 흐름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호기심이 가는 각각의 주제들을 통해 전체적인 시대상을 아우르는 형식을 취한 후, 각 주제 또한 서너 쪽의 짧은 호흡으로 나뉘어 있고 이해를 돕는 그림과 사진이 곁들여져 있어 중고생이나 역사를 어렵게만 느꼈던 독자들도 한국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책이다. 실제로 인터넷 검색 사이트를 통해 책 제목을 검색해 보면 중, 고등학생의 수행평가 교재로도 많이 쓰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 최용범은 전문 역사학자가 아니라 기자를 거쳐 현재 프리랜서 작가 겸 출판기획을 하고 있다. 오히려 이 점이, 이 책을 보다 읽기 쉬운 책으로 만드는 데 한몫을 한 것 같다.

 

 

3. 이 책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역사를 공부하는 일에는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하다. 미처 기록되지 못한 역사적 사실, 또한 기록된 사실을 해석하는 일에도 상상력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엄청나게 다른 것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는 남겨진 증거에 따라 누군가의 자취를 찾아 내는 탐정의 일처럼 아주 중요하고 스릴 넘치는 것이기도 하다. 가볍고, 수박 겉핥기 식의, 깊지 않은 내용을 다루었다는 점이 이 책의 단점이긴 하지만 평소 궁금했지만 좀처럼 알 수 없었던 사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해소시켜 주는 것이 이 책이 지닌 매력이다. 특히 다음과 같은 사실들은 매우 흥미로웠다.

 

 왜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을까? – 성골만이 왕이 될 수 있는 골품제도와 여성의 높은 사회적 지위 때문에 신라에서는 여자도 왕이 될 수 있었다. 고구려, 백제의 경우 왕에게 아들이 없을 경우 유력한 왕족의 한 사람이 계승하면 되었다. 하지만 신라는 성골신분이 아니면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일한 성골이 선덕여왕 밖에 없어 최초의 여왕이 탄생할 수 있었다. 혈통상의 원인 말고도, 신라는 남녀차별이 거의 없을 만큼 여성의 지위가 어느 시대보다 높았다. 여자도 상속권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의 경제권도 쥐고 있었다. 또한 혼인을 하더라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남편의 지위와는 별도로 계속해서 보장되었다.

 

 효녀 지은 설화에서 통일신라의 붕괴를 본다. – 효녀의 아름다운 선행에 대한 이야기인 지은설화에는 비참했던 평민들의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효녀 지은설화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모두 소개된 유명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몰락을 눈앞에 둔 통일신라 말 평민들의 비참한 삶을 엿보게 해준다. 당시 삶의 기반이 없는 평민들은 품팔이를 해서 연명해야 했는데, 효녀 지은설화에서처럼 건강한 여성의 노동력으로도 두 사람의 생활조차 보장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지은은 자신을 노비로 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빈부격차 또한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귀족 효종랑은 종 한 사람 값인 쌀 열 섬의 열 배를 선선히 내놓을 정도의 재력이 있었다. 그의 무리 몇 천도 쌀 한 섬씩을 내놓았는데, 무리는 중간계급인 낭도로 그들 역시 그 정도의 성금은 무리가 없었다. 정강왕이 군사를 보내 도둑을 막게 한 조치도 사회 치안이 마비된 상태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평민들의 굶주림 때문에 효녀의 재물까지도 가리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당시 통일신라는 붕괴직전으로, 임금의 재위기간이 평균 5년도 채 안될 정도로 상부의 권력투쟁이 극심했다. , 효녀지은 설화는 통일신라 말 무너져가는 평민의 삶을 보여주는 확대경인 것이다.

 

 <훈요 10>, 전라도 사람은 절대 기용하지 말라고? – 왕건의 흔적이 1,0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구체적으로 살아있는 것은 그가 남긴 <훈요 10> 8조의 다음 구절이다. “차령산맥 이남 금강 바깥은 산 모양과 지세가 거꾸로 달리고 있고, 인심 또한 그러하다. 그 아래 지역사람이 조정에 참여하여 왕비나 왕실의 친척과 혼인하고 정권을 잡으면 나라에 변란을 일으킬지도 모르며, 후삼국 통합 때의 원한을 품고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후략) 차령산맥 이남은 지금의 전라도 일대다. , 전라도 사람이라면 귀족의 경우는 혼사도 하지 말아야 하고, 천민이면 방면해서도 안되며, 양민이라면 절대 벼슬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조선시대에 이익의 <성호사설>과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그대로 이어져, 호남이 고려 이래 반역의 땅이라고 기록하게 했다.

 

 왕건은 후백제와 20년 싸움을 통해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죽음 직전까지 가는 패배를 당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에서 왕건이 후백제의 근거지였던 전라도에 대해 차별정책을 취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라도 출신인 신숭겸과 도선 등의 예를 볼 때 왕건이 <훈요 10>를 절대시했다고는 볼 수 없다.

 

 세종대왕, 그토록 조화로운 인간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세종은 건강복도, 아들복도, 며느리복도 없었던 불운한 임금이었다. 한국사상 최고의 인물로 숭앙되고 있는 세종, 하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매우 불행한 생을 살았다. 즉위과정부터가 파행이었다. 형인 양녕대군이 폐위되고, 그는 세자가 되어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 태종은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비정한 사나이였다. 세종은 즉위하자마자 세 차례 국상을 맞고 20대부터 두통과 이질, 30대에는 풍병과 종기, 40대에는 백내장, 당뇨, 전립선염, 고혈압 등 갖은 질병에 시달렸다. 또한 맏딸인 정소공주는 13세에,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은 20세에, 일곱째 아들 평원대군은 19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맏며느리도 셋이나 봐야 했는데 그 중 둘째인 세자빈 순빈 봉씨는 낮술을 즐겨 마신 데다, 소쌍이란 여종과 동성애에 빠져 동침을 일삼았다. 군주로서 위대했지만 인간으로선 한없이 불행했던 세종, 하지만 세종은 이런 인간적 불행을 딛고 조선의 국가체제를 완성했다.

 

 광해군, 조선시대 최고의 외교정책가 명청 교체기에 광해군은 명과 청에 대한 절묘한 등거리 외교로 전쟁의 발발을 막았다.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은 쿠데타세력의 역사왜곡 때문에 폭군으로 낙인찍혔다. 역사기록이란 언제나 승리자의 편에서 서술되기 때문이다. 세자시절 아버지 선조의 미움을 받은 까닭은 백성들의 광해군에 대한 인기가 선조를 능가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임진왜란 시절,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대군들의 집이 불탔던 반면 광해군의 저택만 온전했다. 강력한 후금과의 전쟁은 피해야겠기에 중립외교를 절묘하게 구사했던 광해군. 그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전쟁의 참상을 느꼈던 군주였다. 명과 청을 오가는 줄타기 외교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했던 것은 오로지 광해군의 공이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특히 광해군을 권력에서 끌어내린 쿠데타세력도 결국 광해군의 정책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보면 그의 외교정책이 합리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동여지도, 김정호는 정말 옥사했는가? – 대원군이 국가기밀 누설죄로 김정호를 옥에 가둬 죽였다는 속설은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조선시대의 지도마니아 김정호 경제적 보상이나 지위를 탐냈던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온전한 지도제작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점에서 그는 요즘 말로 지도마니아임이 분명하다. 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어 조정에 바치자 쇄국정책을 고집하던 대원군이 국가기밀을 누설했다며 그를 옥에 가두고 <대동여지도>의 목판을 불살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조선 지배층의 무지함을 강조하기 위한 일제의 왜곡이었다는 증거가 다방면에서 제시되었다. 불태워졌다는 목판이 최근까지 수십 장 발견된 것이 그 첫 번째 증거이고, 그를 투옥시켰다는 기록을 <실록>은 물론이고 다른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그 두 번째 증거이다. 또한 김정호의 지도제작을 위해 비변사나 규장각의 관찬 지도자료를 이용하게 후원해준 자가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대원군에 의해 병조판서에 제수된 사실 역시 김정호 옥사설이 조작이었음을 알려준다. 이와 같이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는 우리가 당연시하고, 의심하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해준다.

 

 

4. 나가며

 

 왜 역사책을 읽어야 할까? 살아가는 데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지루한 사건의 나열들을 읽어야 하는 당위가 어디에 있느냐는 말이다. 이에 대한 걸출한 답이 있다. “우리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에 의미를, 그것도 때때로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자. 만약 어떤 사람이 운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면, 그는 죽기 전에 최선을 다하여 문명의 유산을 되도록 많이 모아 그것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숨을 거두기 직전에, 이 무궁무진한 유산이 바로 우리를 낳은 자궁이자 우리의 영원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것에 대해 감사할 것이다.” 월 듀란트가 <역사의 교훈>에서 마지막에 남긴 말이다.  듀란트의 말을 한 마디로 한다면자신이 있게 한 역사를 사랑하자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언급한 <다시 찾는 우리역사> 서문에서 저자는 자신을 사랑하면서 과거를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역사를 공부하는 의의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당위가 있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비슷한 말을 한다.

 

한 개인도 살다 보면 잘한 때도 있고, 부끄러운 때도 있는 법이다.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사를 들여다보면 영광과 치욕이 교차한다.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자기 반성하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 반성할 줄 아는 힘이 근기(根器)있는 자아를 만들고, 이는 같은 오류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만든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라고.

나 역시 모든 역사를 참고하며 끊임없이 반성하기로 다짐한다.

 

- 2008년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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