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우리는 지구에 인간이 나타난 이래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각종 산업 기술 발달은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 주었고, 예전에 비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것을 더 많이, 더 쉽게, 더 빠르게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자연의 자정 능력을 무시한 채 인공적으로 -인간의 편의만을 위해- 행해지면서 우리에게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먹는 농수산품은 각종 농약과 항생제에 찌들었으며, 육류는 건강하게 자란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많은 양의 고기를 얻기 위해 움직이지도 못한 채 고통스럽게 사육된 것이다.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사람들은 건강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웰빙(well-being)이 하나의 생활 트렌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유기농’이라는 단어는 판매를 촉진시키는 대표적인 단어가 되었고,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연일 웰빙을 주제로 한 기사가 나온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유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것인데도 우리는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 너무나 힘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 건강한 먹을 거리, 안전한 음식을 먹는다는 당연한 사실들이 언제부터 왜 이렇게 힘겨운 일이 되어버렸는지 안타깝다.
이 책은 그런 우리들을 향해 ‘바로 나부터’, ‘가까운 곳에서부터’, ‘내 손을 거쳐’ 시작하라며 이야기한다. 사실 요즈음 먹을 거리치고 완전히 안전한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자나 라면같이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음식들이 각종 합성 첨가물에 화학물질로 범벅이 되어있다는 사실은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고, 건강을 생각한답시고 먹은 채소엔 농약이 잔뜩 묻어있고, 고기보다 낫다고 생선을 먹지만 연어나 참치에는 다량의 중금속이 축적되어 있다. 이런 지경이니 좁고 지저분한 시설에서 항생제로 찌들어 `죽지도 못하고` 살쪄온 닭과 돼지 소들은 두말 할 것도 없다.
<희망의 밥상>은 올바른 먹을 거리문화에 대한 제인 구달의 최근 이야기가 실린 책이다. 제인 구달은 동물학자인만큼 동물에 대한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첨부시켜 감동과 재미를 더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하여 그녀는 농산물의 생산과 유통을 장악하는 거대기업들로 인하여 농부들이 농사를 포기하거나 소작농으로 전락하며, 이익에 눈먼 이 기업들의 농간에 소비자들의 건강마저 위협받는 현실을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2. <희망의 밥상>이 이야기 하는 것
제인 구달 박사는 음식점에서 종업원들이 무작정 물을 따르지 못하게 한다. 물을 마시겠다는 사람에게만 따라주라고 말한다. 강연회 연단에 놓인 물도 마찬가지다. 그는 그냥 놔두면 버려질 물통을 강연이 끝난 후 항상 들고 나온다. 안전하게 마실 물이 부족한 사람들을 보아온 그에게는 물 한 컵도 허투루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자원이다.
사소해 보이는 일까지 그리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당면한 커다란 문제가 많은데 고작 조금씩 버려지는 물이라니. 제인 구달은 이 책에서 이런 작은 실천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는지 들려준다. 집에서 차리는 밥상이 인류의 건강과 지구 생태계를 바꾸는 혁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제인 구달 박사는 아프리카 열대 우림 오지에서 침팬지들을 연구하며 침팬지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지구 위 생명체의 소중함을 설파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그녀는 지구 환경과 먹을거리의 상관관계 및 그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전 세계 어린이들과 아프리카 현지 주민들과 공조하여 일선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실천해 왔다. 수십 년간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느끼고 겪은 경험들이 어우러져 탄생한 책이 바로 <희망의 밥상(Harvest for Hope)>이다.
이 책에서 제인 구달 박사는 우리가 매일매일 먹고 있는 것들이 어떻게 생산되고 있으며 어떤 경로로 우리 밥상에까지 올라왔는지, 우리의 건강과 나아가 지구의 건강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전통적인 농경 방식이 산업형 농업으로 바뀌면서 우리네 밥상은 위험한 먹을 거리들로 가득 차게 됐다. 거대 기업들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생산량을 늘리는 데만 관심을 둔다. 무분별하게 뿌려진 화학비료, 살충제, 제초제는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 마시는 물, 먹는 음식에 섞여서 결국 우리 몸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살충제 남용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자 거대 농산업체들이 선택한 대안이 유전자변형식품(GMO)이다. 이들 기업은 이런 작물이 살충제 사용량을 줄이고 환경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동물조차 본능적으로 GMO를 기피하고, GMO를 먹인 동물이 면역체계나 장기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사례는 그 위험성을 보여준다.
닭과 돼지, 소 등 육류의 사육 방법은 상상을 초월한다. 몸집을 키우기 위해 성장 호르몬이 주입되고, 유전자 변형 작물이 사료로 쓰인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좁은 공간에서 길러지기 때문에 병에 걸리기도 쉽다. 이를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항생제가 남용된다. 가금류 처리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중 사소한 상처에도 항생제가 듣지 않아 죽음에 이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산물이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기업적인 어류 양식장은 물에 떠 있는 가금 농장과 다를 바 없다. 왕새우나 연어, 대구 등 각종 해산물은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으로 몸집을 불린다. 양식이 늘어나면서 전세계의 강과 바다는 양식장이 배출한 오염물질로 채워지고, 이 안에서 다시 생선들이 대량 생산된다. 이렇게 생산된 농수산물 및 축산물들은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포장과 운송이라는 비환경적이면서 고비용의 단계를 거친다. 실제 대형 슈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많은 농수산물과 축산물들이 이러한 단계를 거쳐 우리나라에도 들어오고 있다.
저자는 실제 거대 기업에서 생산해 낸 농작물 및 축산물들이 값이 싼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없어진 숲을 되살리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과 그곳의 농작물들을 키우기 위해, 운반하기 위해 사용되는 엄청난 양의 화석 연료 비용, 엄청난 양의 물, 온갖 약물로 범벅이 된 농축산물을 먹은 우리와 우리의 자손이 치러야 할 각종 의료비 등은 전혀 계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몬산토 같은 거대 농산물 기업과 웬디스, 맥도널드 등의 패스트푸드 업체들의 실례를 들어가며 실생활 속에서의 위협과 폐해를 낱낱이 밝히고 있다.
또한 거대 기업들에 의해 전 세계 모든 곳의 밥상이 단일화되면서 지역적 특이성을 가진 먹을거리들이 몰락했을 뿐만 아니라 그 지역 고유의 문화와 지역 사람들의 건강까지도 함께 몰락할 위기에 처했음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세계 최고의 장수촌으로 일컬어지던 일본의 오키나와 현이 서구식 패스트푸드들로 인해 두부와 야채 위주의 전통 건강식을 버리게 됨으로써 심각한 비만과 당뇨, 심근경색 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의 최근 언론 기사는 제인 구달 박사의 이러한 주장이 과장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제인 구달 박사는 전 세계 곳곳을 다니며 지역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겪은 경험을 십분 살려 단순히 서양의 먹을 거리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륙, 아시아 등 전 세계의 다양한 먹을 거리들을 자세하게 다루면서 거대 기업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전 세계인의 건강과 지구의 미래에 대해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제인 구달 박사는 비만이나 당뇨, 심장 질환 같은 만성적인 질환에서부터 에이즈, 사스, 조류 독감 같은 전염성 질병까지,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수많은 질병들이 바로 우리가 잘못된 먹을거리를 택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단지 나 하나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아이가 잘 살기 위해, 그리고 그 후대의 아이들이 잘 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식습관을 되돌아보고 우리 밥상에 진정한 변화를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제인 구달은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채식을 늘리고 육식을 줄이며, 내 고장에서 나는 제철 유기농을 먹으라고 제안한다. 이를 통해 소규모 자영농을 되살리고 동물을 해방할 수 있다. 나와 인류, 지구의 미래를 위한 길이다.
소비자가 원하면 바뀔 수밖에 없는 게 상업이고, 그러면 제조업과 농업도 변할 수밖에 없다. 깐깐하게 따져서 좋은 식품을 사고 무엇을 원하는지 전달하자. “변화를 이끌어 갈 원동력은 바로 우리, 평범한 대중들이다. 먹을거리를 사러 시장에 갈 때나 식당에서 식사 메뉴를 정할 때마다 우리가 하는 선택이 차이를 만들 것이다.”
3.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제인 구달의 <희망의 밥상>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희망보다 절망에 휩싸여, 공포와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현재가 얼마나 절망적인가를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것이 순서였을까? 다행히 제인 구달 박사는 이 책을 쓰는 이유를 통해 나의 두려움을 적이 거두어 가 주었다. 그녀는 이 책을 끝까지 읽은 독자에게 일상 속의 너무나 하찮아 보이는 작은 실천들이,- 과연 인류의 희망적 미래 가꾸기라는 너무도 버거워 보이는 대의에 과연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수줍은 염려를 동반하는- 얼마나 큰 일들을 해낼 수 있는가를 친절하고 자세하게 알려 주면서 우리의 어깨를 힘차게 두드려 주고 있다.
제인 구달은 우리가 희망의 밥상을 소망하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를 3가지 관점에서 제기하고 있다.
첫째, 우리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현재의 먹을 거리들에는 커다란 변화가 필요하다.
둘째, 우리처럼 고통을 느낄 줄 아는 동물에 대한 사랑과 인도주의의 실천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밥상은 바뀌어야 한다.
셋째, 우리가 사용한 지구를 후손들에게 건강하게 물려주기 위해서 먹을 거리의 변화는 절대적이다.
절망적 상황을 보여준 제인 구달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너무나 쉽고 평범해 보여서 결코 이러한 엄청난 문제의 답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단순하고 작은- 하지만 이것들이 쌓일 때 커다란 파괴력을 갖는- 방법을 제시한다. 큰 둑도 바늘 구멍만큼 작은 구멍 때문에 무너지기 시작한다고 했던가. 이 책을 통해 어느 샌가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의 미래를 공격하는 세계 식량 메이저들과 이를 비호하는 세계 각국의 정부- 그들의 자본으로 정치력을 키우고 있는- 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이러한 거인 골리앗과 싸우는 무수한 다윗들- 더 건강하고 자연 친화적인 농토를 만들고자 하는 유기농 농부, 식품 속의 독성물질과 항생제를 염려하는 보건 전문가, 공장식 사육장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우려하는 환경운동가, 식품의 근본에 대해 더 정확한 사실들이 기재되기를 바라는 소비자, 온갖 유해물질로부터 자유로운 더 안전한 작업 환경을 원하는 노조 활동가처럼 위대한 무수한 유기농 농부들, 환경운동가들-이 우리의 미래를 지켜줄 희망, 그것이라는 것, 그리고 나도 이 희망 만들기의 분명한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듯 우리 식탁의 '육식'은 확고부동히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이것은 식품 영양의 가치를 영양소의 비율이 아닌 배가 꺼지는 시간을 척도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더이상 밥상 앞의 반찬 종류를 헤아리기 이전에 제인구달의 <희망의 밥상>을 펼쳐야 한다. 그리고 우리 앞의 음식이 어떻게 재배되었고, 사육되었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것은 나의 건강, 우리 가족의 건강을 넘어서 지구의 건강까지 위하는 길이다.
일단 <희망의 밥상>은 '육식주의'를 배척의 대상으로 삼고 '채식주의'를 절대적으로 지지하자는 고리타분하고 비현실적인 책이 아니다. 다만 농산업 기업과 공장식 사육장을 통해 비윤리적이고 끔찍한 환경에서 길러지는 동물과 채소가 각종 유해물질,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균을 가지고 우리 몸으로 고스란히 침투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면서 그 문제점을 상세히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지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의 밥상>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희망적인 대안을 제시해놓고 있다.
책을 읽고 식탁에 앉은 나는 어느 곳에도 젓가락을 정착시킬 수 없었다. 그만큼 우리 밥상은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제인구달의 말처럼 이러한 밥상은 한 개인의 건강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 된다. 이것은 비약이 아니다. 한 겨울 싱싱한 포도를 먹기 위한 과정- 식품을 운반하면서 나오는 트럭과 비행기의 매연, 수천 마일의 여행을 견디도록 특별히 가공하고 포장하면서 발생하는 포장쓰레기에서 나오는 독성 물질- 을 인식한다면 말이다.
또한 밥상의 문제, 환경 문제 등을 언급하면서 피상적으로 개념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각종 논문과 저서, 연구 결과를 통해 주장의 설득력과 신뢰도를 더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라면 청소년 교정 시설에 수감되어 있는 8,000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한 실험이다.
선정된 청소년들에게 건강한 음식(가령, 신선한 과일이나 야채, 생선, 통밀 빵)을 제공했더니 연구가 진행되던 그 해에 각 교정시설에서는 물리적 폭력과 언어폭력, 그리고 탈옥과 자살 시도 건수가 절반이 줄었다는 것이다.
나가며
문제점을 언급하고 뒤를 이어 등장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에서는 실현불가능하고, 막연한 임무를 제시하지 않는다. 제인 구달의 말을 빌어 "한 걸음씩 세상 바꾸기"에 동참할 수 있도록 딱 한 걸음씩을 제시하고 있다. 가령 식사할 때 ‘접시에 담은 음식을 줄이자.’ 식이다. 여기서 대안치고 시시하다.라고 말한다면 오산이다. 다시 한번 이것은 "해야 할 일"이 아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이며, 이 작은 실천은 곧 우리의 권력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희망적인 대안이 아닐까 싶다.
<희망의 밥상>은 밥상에 조예가 없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다. 전혀 관념적이지 않으며 일상과 동떨어져 있지도 않다. 친절하게 제인구달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아무리 두꺼운 페이지라도 쉽게 넘길 수 있다. 또한 절망적인 상황을 지적하면서도 희망의 대안을 제시해주기 때문에 이 책은 그야말로 <희망의 밥상>이라 하겠다.
- 2008년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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