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길에 그의 부고를 인터넷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연예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누군가의 팬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사람도 그가 처음이었다.
그의 죽음에 이렇게 슬퍼지는 건 단순히 그를 뮤지션으로서 좋아하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 중 그를 좋아했던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사춘기 시절,
그의 음악은 미래에 대해 그리고 삶의 이유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던
나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보기 드문 존재였다.
'매니 가이즈 얼웨이즈 텔링 어 라이'를 한글로 받아써서 따라 불렀고,
<50년 후의 내 모습>을 들으며 와닿지도 않는'노후연금, 사회보장 아마 변할 수도 있겠지만' 구절을 흥얼거리기도 했고,
장엄하게 시작되는 <길 위에서>의 전주를 들으며 정체 모를 외로움에 당혹스러워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힘이 들어간 것 같은 <불멸에 관하여>도 그 때는 그렇게 좋았다. '사라져 가야한다면 사라질 뿐....'
'외로움이 당신에게 속삭일 때 더 이상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죽는 날까지 헤어질 수 없는 친구일 뿐이다.'라고 했던
<외로움의 거리>에서 그가 했던 나레이션도 그 때는 평생 가슴속에 담고 살아야할 경구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와 나>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로 시작하는 그 나레이션을
이제 어느 뮤지션이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좋아하던 그였는데 공부한다고, 사랑한다고, 돈번다고 조금씩 그의 음악과는 거리를 두며 살게 되었다.
그가 음악에서 했던 이야기들은 어느 매체를 통해서나 언제든지 접할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었고,
사실 나에게 그의 음악보다는 김현철이나 유희열의 음악이 더 맞았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가끔 그를 보며 '참 말잘한다.' '많이 상하셨네.'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응원했는데 이별의 시간이 이렇게 빨리 올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연이라도 한 번 가볼걸.
언제나 후회는 이렇게 덧없이 찾아온다.
20대초 누군가를 떠나보내면서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든적이 있었는데
오늘도 그 마음 그대로다. 이렇게 그에 대한 나의 기억을 나열하면서 그가 떠났음을 상기해본다.
그에게 많은 빚을 졌다. 아마 그의 죽음에 슬퍼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이제 그를 보내야 한다.
잘가요. 내 한 시절의 영웅.
그는 갔지만 아마 난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가끔씩 그를 떠올리며 생각할 것이다.
Hero is here.
*제목은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나온 'Brooks was here' 인용
2014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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