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 한 번 못듣고,
변변치 않은 메모 하나 남기지 못하고 10월을 그냥 보냈다.
언제나, 10월에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이번 10월은 그 기억들을 저 편에 떼어두고 하루하루를 살았다.
해매다 10월이면 생각나는 날짜가 있었다.
원주 집의 아파트 단지를 나오면 걷게 되는 아파트 담벼락.
10월 말이 되면 담벼락 아래에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뒹군다.
그 나뭇잎을 밟으며, 점퍼의 지퍼를 잠그지 않고 손을 넣고
한참을 걸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벌써 10여년이 지난 이야기라니.
일찍 집에 와서 티비를 트니 하수빈이 나온다.
실은 6학년 때 하수빈 스티커 구입한 적 있었는데,
넥스트가 당시 HOME 앨범 냈을 때였는데, 맙소사
넥스트 스티커도 얼추 비슷한 시기에 산 것 같다.
이야기하다가 샜는데, 암튼 하수빈의 부자연스러운 얼굴만큼이나
나도 참 많이 변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더 살아야 살아온 만큼 내가 원하는 만큼 현명해질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경험을 하면 좀 덜 흔들릴 수 있을까.
예고없이 일어나는 일에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넘기는 것이
성숙해지는 것은 아닐텐데, 요즘 난 모든 일을 그렇게
쉽게 넘겨버리는 것이 아닐까? (뭐. 그렇지는 않지. 또 이런 식)
아무도 없는 텅빈 집에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차를 달려 원주로 내려갔던 기억.
눈을 뜨면 어떤 세상이 기다릴지 두려워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멍하니 있었던 아침.
이제 취한 어느 저녁의 기억처럼 아득해진다.
그렇게 취한 저녁이 있었다.
나의 10월에는.
2010년 11월 2일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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