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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영화감상문, 김태용 감독 영화 <가족의 탄생>

by 팬시남 2021. 1. 21.

 

2006년 개봉한 영화 가족의 탄생, 다들 어리다 어려 ㅎㅎ

 감동을 말로 표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음악 파일이나 영화의 캡처 사진을 가사나 대사와 함께 블로그나 미니홈페이지에 옮겨 놓는 것도 그것이 감동을 공유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를 본지 2개월 정도 됐나. ‘올해 본 영화 중 최고’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가슴 속에 밀려오는 감동과 공감의 이유들을 잡아내어 글로 정리하기 힘들었다.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났는데도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보았을 때 놓친 대사들이 몇 개 들어오고 무심코 넘긴 몇몇 장면들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세 가지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처음 두 개의 에피소드가 마지막 에피소드로 수렴되는 구조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의 미라와 무신의 어중간한 관계와 두 번째 에피소드의 선경과 경석의 어색한 남매관계는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정서적으로 유대 깊은 가족관계를 이룬다. 그리고 이 두 가족의 이야기는 채현과 경석을 통해 현재로 넘어온다. 무심한 듯 영화는 진행되지만 치밀하게 얽히고설켜있고,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이 전개되지만 끝은 판타지로 종결된다. 이러한 판타지를 통해서 감독은 세상에 존재하기 어려운 헤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헤픈 게 나쁜 거야?” 라고 채현은 경석에게 묻는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그걸 말이라고 하니, 헤픈 건 나쁜 거야.’ 라고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내가 만일 경석의 입장이었더라도 그렇게 화를 내고 헤어짐까지 생각했을 것이다. 경석이 니가 옆에 있어도 외로워 죽을 것 같다고 했던가. 아. 그 말만큼 최근 영화를 보면서 공감했던 말이 있었나. 성격이 두드러지는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채현의 상대역인 경석에게 감정이입이 가장 잘 되었다. 경석은 헤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다. 어머니, 누나(어느 새 어머니를 닮아있는), 채현, 그리고 미라와 무신(채현과의 관계가 지속된다는 가정 하에 따라). 영화를 보며 이렇게까지 헤퍼야하는 건가, 이렇게까지 헤플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물론 헤픈 것을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베푸는 헤픔 때문에 나와 내 주변사람이 한 번 더 웃고 행복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없이 이기적이 될 수도 있는 그 물음에 대한 부정의 답을 내리기는 사실 매우 조심스럽다.

영화 가족의 탄생 (정유미와 봉태규)

 “너 나한테 왜 그래?” 어쩌면 이 영화는 이 대사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르겠다. 미라는 형철에게, 선경과 준호는 서로에게, 경석은 채현에게 이 말을 한다. 사랑받기 바라는 사람으로부터 실망하고, 그렇게 됨으로써 기대가 틀어질 때 그들이 상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격한 원망의 말이다. 이 말을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라는 말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못 견딜 것처럼 화내고 절망하며 묻지만, 그들의 마음 한편에는 너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어야 할 사람은 나 밖에 없는데 나한테 이러는 건 좀 심하지 않니? 하는 물음. 물론 그 의문 뒤에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포용하려는 헤픔 또한 있을 것이다.

 

내가 중요시 여기는 가치 중 하나는 가족이다. 그것이 없으면 세상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족들에게 더 관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내가 생각하는 가족관계를 혈연의 문제를 떠나서 이야기 하고 있다. 굳이 한 집에 사는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이해해 주고, 헤프게 받아주면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나한테 왜 그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도 사랑과 연민으로 보듬어 준다면 새로운 가족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가족, 관계, 연애 등 상투적이기 짝이 없는 모티프들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작가와 감독에게 경이를 느낀다. 머리로 이해되는 영화보다 가슴으로 받아들여지는 영화를 원한다, 라고 김태용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내가 생각할 때 이번 영화는 그 목적을 달성한 듯하다. 삶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있는 감독의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

 

- 2006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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