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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은희경의 '장미의 이름은 장미' 감상

by 팬시남 2022. 3. 25.

코로나가 만들어준 독서시간 

 아들이 코로나에 확진되고, 며칠 뒤 나도 확진되었다.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을 수 없어서 솔선수범하는 아빠가 되고싶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댔다. 확진 판정을 받기 직전 잽싸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쌓아두었고, 구매해둔 책 중 읽지 않은 책은 넘쳐나니 ㅎ 예상외로 첫번째로 다 읽은 책은 은희경의 장미의 이름은 장미였다. 집에서 홈트레이닝을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순식간에 한 작품을 다 읽어 버렸다. 다른 작품들도 워낙 재미있어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은희경 '장미의 이름은 장미'  

 꾸준하게 은희경의 책을 읽어오지 않았지만,  그 동안 읽어온 은희경의 작품들은 보이지 않는 너머의 불편함을 기막히게 지적해 내었다. 미처 몰랐던 것도 '아 그랬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이번 작품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문제 없는 친구 사이, 자식과 부모 사이, 연인 사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구석이 있고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벌어진 틈새에 대해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는 작가의 관찰과 서술이 좋았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라고 했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장미는 다 다르다고. 당신의 이름은 당신이지만 '나'와 '당신'은 다르기에 서로 어긋날 수 밖에 없음을. 우리에게는 그저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방법 밖에 없음을 넌지시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아래는 인상적이었던 구절들

 백수린 작가의 추천평처럼 ‘은희경의 이름은 은희경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선물 받았던 새의 선물을 다시 읽어 보아야겠다.

 민영은 그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 옷을 입고 면접을 봐도 어차피 취직은 되지 않는다는 걸 엄마도 민영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엄마에게는 그 옷을 사줄 능력이 없었다. 엄마 자신은 탈의실에서조차 입어본 적 없는 옷이었다. 그럼에도 사자고 우기는 이유는 단지 그 옷이 민영의 등뼈를 곧게 세우고 얼굴에 조명을 반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해온 길고 힘들었던 뒷바라지의 정점에서 마지막으로 무리한 안간힘을 써볼 작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민영이 그 옷을 사지 않겠다고 강력히 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있지 않았을까. 사라고 우기는 자신의 모습을 각인시키기는 데까지만 성공해도 그 옷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해내는 셈이었다. 서로가 알면서도 연기를 하고 그 연기에 진심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 그런 기만이 필요할 만큼 둘 다 약해져 있었다. 
58~59p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그 때 민영과 엄마는 둘 다 자기가 일궈놓은 세계로부터 거부당했고 삶이 임시 거처였고 돌아갈 곳은 없었다. 엄마의 삶에는 남아 있는 기회마저 그다지 없었다 일생을 두고 모두를 준 존재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더이상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만큼 그녀를 무력하게 만드는 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민영은 엄마의 생각처럼 뛰어난 것도 철이 든 것도 아니었다. 그랬다면 하나뿐인 가족의 생일을 잊어버리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60p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너 불편하면 그냥 소포로 보내도 돼." 그대로 방을 나가려는 민영을 향해 승아는 생일 선물이라면서 날짜는 지켜야지, 라고 대꾸하고 말았다. 승아의 성실함에는 어떤 종류의 충성심 같은 게 포함돼 있었고 사실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게 더 근접한 이유였을 것이다. 
63p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어머니가 아들과 마찬가지로 딸에게도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다는 걸 누나는 깨닫지 못했다. 또 어려운 형편에 세 자식에게 똑같이 대학 교육을 시키는 데에는 의지와 책임감이 필요했다. 어떤 헌신은 당연하게 여겨져 셈에서 제외된다. 시기와 처지에 따라 개인의 욕망에 대한 도덕적 해석이 바뀌는 것도 이상했다. 그리고 자기애가 강하다고 해서 모두가 자신의 삶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210p <아가씨 유정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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