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김혼비 작가의 책
김혼비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본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라는 책이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아니 인터넷을 통해 보기도 했고, 아무튼 시리즈 중 하나인 '아무튼, 술'에 대한 호평을 읽은 적이 있다. 마침 도서관에 갔다가 신간에 '다정소감'이 있어서 망설이지 않고 대여했다.
잘 모르니 기대는 없었다만, 매우 재미있는
김혼비 작가에 대해서 잘 몰랐다. 혼비라는 이름이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맙소사 '혼비'라는 필명은 영화 '어바웃 어 보이'의 원작자이며 추구를 사랑해서 '피버피치'라는 책을 쓴 영국의 작가 '닉혼비'로부터 온 것이었다고 한다.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작가
김솔통이라는 기억 속의 제품을 환기시키면서 저자는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한다' (저자와는 달리 나는 김솔통을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존재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해서 무척 반가운 존재가 되고 싶다고. 정말 그런 글을 글을 쓴다면 참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던지는 화두들도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전공 때문인지 맞춤법에 예민하고, 뜬금없이 틀리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맞춤법 오용 사례'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저자는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 한다.
때로 이 '기본'이라는 지나치게 확고한 단어는 '기본' 바깥 사람들의 저마다 다른 맥락과 상황을 쉽게 지우기도 한다. A와 나는 성장한 과정도, 몰두하는 대상도 다른데, A의 맞춤법을 보며 나는 "왜 맞춤법을 잘 모를까?"를 따져볼 생각조차 안했다. 왜? 기본이니까. 기본이라는 것은 이유 불문하고 어느 정도 당연히 갖춰야 하는 거니까. 그래서 '기본'이라고 하는 거니까.
기본 소양이라는 것이 (중략) 그것을 배우고 갖추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와 환경이 확보되어야 하는 건데, 그런 확보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기본'으로서 누군가를 판단할 때 배제되기 쉬운 불리한 어떤 입장들에 대해 잊고 있었다. (중략)
게다가 '기본'이라는 단어에는 기본에 미치지 못하는 한 부분을 그 사람의 전체로 확장해버리는 힘이 있다. 한 사람에 대한 호감을 좌우할 정도로.
103p.
제사와 관련된 흉흉한 이야기들도 특정 집단에만 유리하게 짜여져 있음을 지적한다 (난 왜 여태 몰랐지?) 남자네 집 제사 지내느라 내 제사에는 오지 않는 증손녀 부부에게 분노해서 그 집안에 저주를 내리는 조상신 이야기는 들어본적이 없다며! 그 반대는 너무나 많은데 말이다.
아래 부분에서 결국 현웃 (현실 웃음)이 터짐 ㅎㅎ
무엇보다 후손에게 복과 재앙을 골라서 내릴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지녔으면서 밥 한끼를 알아서 먹지 못해 배고프다고 꿈에까지 찾아오다니 정말 독특한 영혼이 아닐 수 없다.
84p.
의도치 않게 친구를 외롭게 한 것 같다고 저자가 이야기한 에피소드도 짠했다.
관심이란 달짝지근한 음료수 같아서 한 모금 마시면 없던 갈증도 생긴다는 것을, 함께 마실 충분한 물이 없다면 건네지도 마시지도 않는 편이 좋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한다. 순간의 기분으로 문 너머 외로운 누군가에게 다가가려다가도, 가장 따뜻한 방식으로 결국에는 가장 차가웠던 그 때의 내가 떠올라 발을 머춘다. 끝까지 내밀 손이 아닐 것 같으면 이내 거둔다. 항상성이 없는 섣부른 호의가 만들어내는 깨지기 쉬운 것들이 두렵다. 그래서 늘 머뭇댄다
136p.
실제 생활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표현
책 목처럼 김혼비 작가의 글은 다정했다. 그러면서도 생생했다. 오랜시간 꾸준하게 글을 써온 사람이겠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 언젠가 새로운 부서로 발령 받고 적응하지 못하고, 직장 상사의 무언의 눈빛으로 힘들어 하던 시기의 심정을 그려 놓은 구절도 그랬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성가시고 하찮은 존재'로 매일매일 규정되다 보면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라는 글자는 슬며시 사라지고 그저 '성가시고 하찮은 존재'로서 나만 남는다는 것을. 나에게 조차 나는 성가시고 하찮았다. 그렇게 하찮을 수가 없었다.
205p.
이러한 상황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한 번쯤 경험해봤다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묘사 능력인 것 같다.
친구가 끓여 준 사골 육수 + 농심 사리 곰탕면을 먹을 때의 표현도 좋았다.
기억나는 건 가게 앞에 쭈그러져 있는 풍선 인형에 바람을 넣으면 팽팽하게 부풀면서 우뚝 서듯 무너져 있던 마음 한 구석이 서서히 일어나던 생생한 느낌. 한 입 두 입 계속 먹을 때마다 몸속을 세차게 흐르는 뜨겁고 진한 국물에 심장에 박혀 있던 비난의 가시들이 뽑혀 나가는 것 같았다. 마음의 틈새마다 눌어붙어 있던 자괴와 절망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국물이 흘러들어오고 눈물이 흘러나가면서 내 눈에 옮아 있던 날 선 눈빛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210p.
'어린이라는 세계'의 저자인 김소영 작가는 추천사에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지만, 김혼비 작가와 친구'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글을 읽으면 결국 그와 친구가 된다고 이야기 한다. 김소영 작가의 말이 무엇인지 동의가 된다. 비록 김혼비 작가를 본 적은 없지만 작가의 글을 읽으니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것 같고, 왠지 '우리 서로 친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리고 작가의 다른 책도 얼른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당분간 김혼비 작가의 인기는 계속될 것 같다. ㅎㅎ 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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